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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08 미래를 향하면서도 과거로 가기
다행히 어제 있었던 늦은 술자리 후유증을 크게 느끼지 못한채 학교로 갈 수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잘 때는 과연 내일 있는 실험수업에 늦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로써 세번째 실험 수업에 들어갔다. 정보디스플레이, 생물학과 그리고 오늘 화학과. 반마다(혹은 과마다) 아이들 성향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앞서 들어간 두번의 실험 수업은 어떤 사정 때문에 딱 한 번씩만 들어간 것이고 오늘 들어간 반만 앞으로 한학기 내내 들어갈 것이다. 근데 아이들이 질문은 별로 없는데 아주 개구지다.

요즘 폴 오스터의 고독의 발명을 읽고 있는데 기억의 서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1979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의 삶은 더 이상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라디오를 틀고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한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현재에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미래에서 현재를 보고 있다고 느꼈고, 그 과거로서의 현재는 너무 진부한 것이 되어서 보통때 같았으면 그를 분노로 가득 채웠을 그 날의 지독한 우울감마저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떤 잃어버린 문명의 연대기에 적힌 것을 읽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정신이 아주 맑아졌을 때 그는 그 느낌을 현재에 대한 향수라고 부르곤 했다.

......중략......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아들이 된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보고 그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을 본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를 볼 때 무엇을 보는지 상상하면서 자신이 그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그는 그 일로 감동을 받는다. 그를 감동시키는 것은 단지 그 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또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 안에 서 있다는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아이를 통해 보는 자신의 사라져 버린 과거이다. 그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향수, 지가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이 그 순간 행복감과 슬픔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만약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가는 동시에 뒤로도 가고 있는 것처럼., 미래로 들어가는 동시에 과거로도 들어가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너무 강해서 그의 삶이 더 이상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떄가 있다. 그것도 자주 있다.

"그것도 자주 있다."
중얼거리면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나는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현재다. 그런데 나와 관련이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보는 것이다. 시간은 미래로 흐르는데 나는 과거로 향하는 어떤 하나의 프로세스.
그리고는 개구진 1학년들과, 교정에 꽉찬 사람들의 물결을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