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치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7.04 나이.
  2. 2008.06.28 첼로를 하게 된 이유

나이.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7. 4. 03:00 posted by 파란수

오늘 지하철 4호선 한 칸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한 할아버지를 봤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너무 소리를 질러 정확하게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대강 이런 것이었다.

"촛불이...........(어쩌고)
경제를 살려야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하고...........(저쩌고)
민주노총? 노동계? 다 패버려야 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자, "시끄러?시끄러우면 다른 칸 가!"라고 소리도 질렀다.(그 말이 끝나자 할아버지 옆에 앉은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진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난 한정거장만 가면 되는 처지라, 내가 내릴 곳에서 내렸다.

곧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저 할아버지도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과 그 경험으로 생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개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당대표로, 아님 어떤 집단의 대표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야 개인 자격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당의 의견을 관철 시키기 위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어거지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저 할아버지는 그건 아니므로 개인 대 개인으로 충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귀를 닫고 있었다.
저분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몇십년을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난 그게 더 두렵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니. 그렇게 어떤 틀 안에서 갇혀버리게 된다니.
이런 두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 루이제 린저 생의 한 가운데에서 니나가 어린 시절 할머니를 보고 드는 생각을 쓴 부분을 읽었을 때 부터였던 것 같다.(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좀 더 생각이 명쾌해지고, 깊어지는 게 아니라 저렇게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니나는 저 문제를 해결했던 것 같은데 난 아직도 해결이 안된다.
나이가 들면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있다. 다리가 아파서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못할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악기를 켠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는지 하는 취미활동을 못할 수도 있고, 눈이 나빠져 책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게 생각난다. 젊었을 때는 맛있는 와인을 좋아하고, 좋은 스피커로 음악 듣는 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드니 맛있는 와인이든 맛없는 와인이든 맛이 똑같고, 좋은 스피커로 들어나 나쁜 스피커도 들으나 구별이 안된다고)이것 만으로도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충분히 공포 대상인데 슬기롭게 되지는 못할 망정 자기 생각에 갇혀버리게 된다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입안에서 쓴 맛이 가시질 않는다.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겠지.
말을 하지 않았을 때는 못생겼는데 말을 하는 순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좀 멍청해 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이러한 고백도 얼마나 멍청하고 닭살 돋는 고백인지)
만약 내가 늙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집회가 벌어졌을 때 그 집회에 찾아가 젊은 사람들에게 왜 여기 나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충분히 설득 당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서.

첼로를 하게 된 이유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6. 28. 14:41 posted by 파란수
첼로를 하고싶다라는 생각을 언제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가 선택한 대부부의 답들이 그렇듯 드라마틱한 동기보다는 나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잡념의 덩어리들이 길고 긴 시간을 내 주위에서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뭉쳐져 한손에 잡히는 확실한 신념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게 바로 그것이었다. '첼로를 배우고 싶다.'
고3 때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대학교에 가면 첼로를 배워서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유럽을 돌아다니다 돈 떨어지면 악기 연주로 구걸할 수 있지 않겠냐고. 웃기게도 그 당시 나는 첼로를 배우고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악기도 없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야, 그럴 돈이 어디 있냐?"
그렇다. 난 돈도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첼로라는 작지 않은 덩치의 악기를 상하지 않도록 비행기에 태우는 것도 문제라는거, (그러기 위해선 몇십만원짜리 고가의 케이스가 필요하다.) 그 녀석을 들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도 불가능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다.
아무튼 그 당시엔 몰랐으니까. 꿈꾸는 건 누구에게나 자유니까. 아무렇게나 함부로 꿈을 내 뱉어도 괜찮았으니까. 마음껏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얘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나이 때에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난 정말 레슨을 받고자 했다. 수능이 끝난 2000년 겨울, 첼로 카페에 '모여서 레슨 받을 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돈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저렴하게 배워야 했기 때문에 단체 레슨이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근데 웃긴건 선생님을 구한 상태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모였다. 게다가 선생님도 구해졌다! 내 글을 보고 레슨해주고 싶다고 연락이 온거다.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해서 연락처를 모으고, 선생님을 먼저 만나서 레슨 날짜를 잡았다. 선생님은 첼로전공자였고 지방대를 나온 아주머니셨다. (정확히 엄마뻘이었다.) 막상 모이고 나니 몇사람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튼 레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한달에 10만원.
지금 생각해도 꿈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악기를 잡았을 때를 잊을 수 없는데, 보잘 것 없는 실력이었을테니 소리가 좋았을리 만무하지만 송진 묻은 활과 현의 마찰이 색깔있는 소리를 내며 악기를 공명시키고 첼로 뒤판을 거쳐 손과 가슴에 그 울림이 전해졌을 때는, 난 절대 알수 없었던 오래된 역사적인 사건을 바로 옆에서 낱낱히 보게 되는 듯한 명쾌함과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입학해서는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내 첼로도 샀다. 첼로를 사는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회소화 하고 싶었던 우리 엄마의 금전적 희생이 뒤따랐다. 이 사고 잘 치는 딸내미..
이제, (철딱서니 없는)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비행기 값을 벌어야 하는데 이게 문제였다. 레슨비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댔었는데, 그 당시 시급이 2,000원이어서 한달 벌면 10만원이 조금 넘었다. 레슨비를 빼면 몇만원정도 남는데 밥값과 동아리비(오케스트라 말고 물리학술동아리도 들고, 율동동아리도 들고.. 무지하게 많은 동아리를 들었었다.)를 내도 나면 남는게 없었다. 나중엔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좀더 고급(?) 직종인 과외를 했는데 과외하면서는 돈을 조금 벌 수 있었다.
시간도 문제였다. 일주일에 두번 첼로를 들고 강동에 있는 피아노학원으로 갔는데 그 학원 가는게 꽤 노동이었다. 역에서 멀어서 왔다갔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악기를 산 뒤에는 들고 갔기 때문에 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에 다녔다. 근데 대학 새내기, 1학년이라는 게 왜 이리 바쁜지. 게다가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 궁금증이 솟아나오는 환경들..그리고 시험기간이라치면 더더욱 레슨을 빼먹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몰래 음대 연습실에 들어가 연습도 해보고(경비 아저씨가 나가라고 한 적도 있다.)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뮤직캠프도 가고 미완성 교향곡을 메인테마로 연주회도 했다. 물론 내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내에서 끼익끼익 소리내는 정도였다. 연주회 때는 민폐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려운 부분은 활만 움직이는 '활싱크' 테크닉을 익혔다.(;;;;)
근데 이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라는 것도 돈이 엄청 들어가는 단체였다. 물론 동아리 운영을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돈이었겠지만 나에게는 10만원정도 들어가는 뮤직캠프도, 1~2만원정도 회비가 필요한 모임도 부담이었다. 과외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없을 때는 저축해돈 돈을 곶감 빼먹듯 빼먹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레슨은 그만두었고 오케스트라 동아리도 <어떤 문제>로 그냥 나오게 되었다. 동아리만큼은 사람 사이 인연도 있고 해서 큰 모임은 참석하고, 내라는 돈도 다 냈었는데(1학년 말인가 2학년 초인가 쯤 많은 동아리 회원들이 그 학기 방학에 있을 뮤직캠프를 불참하자, 참가하든 하지 않든 동아리 발전비로써 캠프비 10만원을 내고 내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했었다. 난 뮤직캠프는 불참하고 발전비 10만원을 냈다.)뭐..그 <어떤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자 자연스레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제명당했다.

이걸 끝으로 내 첼로는 몇년간 잠을 자다, 중간에 잠깐 레슨 선생님의 도움으로 잠을 깼다가(너무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자;;그지 본능;;선생님이 공짜로 알려주겠다고 했었다.)멀다는 핑계로 힘들어져서 그만 두고 나서는 또 잠이 들었다. 그 중간에 잠깐 깨있었던 시간들을 포함하면 대략 7년을 조용히 내 방 한구석에서 그냥 서 있었던 셈이다.
돈과 시간..대한민국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것도 없었다. 결국 (철딱서니 없는)유럽여행도 갈 수 없었다.



다시 첼로를 들었을 때는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새로운 레슨 선생님을 만나고, 악기사에 가서 내 첼로 상태를 보여주고. 악기사 아저씨는  7년 동안 방치했던 첼로 같지 않게 거의 손볼 데가 없다고 했다. 이 것도 참 다행이었다. 만약 앞판 뒷판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거나, 터졌으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을테니 말이다.
현도 녹슬어서 원래는 갈아야 하지만 유로화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끊어지지면 바꾸라고 레슨 선생님이 말해서 현도 갈지 않았다. (아직도 그 현 쓰고 있는데 언제 끊어질지 불안불안하다.)

왜  바이올린이 아니었는지, 플룻이 아니었는지..처음 첼로를 잡았던 날을 생각하면 답이 떠오른다.
난 대강 그 느낌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지.

옛날 내 꿈이 유럽에서 돈 떨어지면 구걸하려고 첼로를 배운다면, 지금은 평생 친구로서 첼로를 배운다.
여전히 내 실력은 바닥을 길 만큼 어설프로 형편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들려주고, 내가 즐기기 위해서.

그러면 언젠가, 유럽 한복판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 대학로 어느 구석에서라도 구걸할 순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