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09.02.16 닥터후에 진짜 도킨스가 나오네?
  2. 2008.12.23 유엔미래보고서
  3. 2008.08.07 바이올린이라...-통증으로 인한 잡생각
  4. 2008.07.04 나이.
  5. 2008.07.04 [소설] 뺑소니 사고
  6. 2008.06.28 첼로를 하게 된 이유
  7. 2008.06.16 손가락 아프다..
  8. 2008.06.10 즐거운 농부와 잡담
  9. 2008.05.29 자세
  10. 2007.10.08 헌책방에서
어제 닥터후(시즌4, 에피소드 12,도난당한 지구The stolen earth)에 나온 리처드 도킨스씨.



알고봤더니..도킨스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개로 올닥에서 2대 로마나 역할을 맡았던 랄라 워드랑 결혼을 했다나. 와우 이런 인연이-!

유엔미래보고서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12. 23. 10:08 posted by 파란수
저번 주 주말, 서점에서 책을 여러권 '질렀다'.
그 중에 한 권인 유엔미래보고서를 어제 다 읽었는데 정치, 사회, 경제 같은 소제목 밑에 한두페이지 남짓한 몇개의 짧막짧막한 글들이 묶여 있어 자기 전에 읽기 좋았다.(?)
집단 지성이나 대체 에너지, 그리고 국내 정치편에서 대북 관련한 내용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슈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굳이 꼽자면 직업 정치인이 사라지고 네트워크를 이용한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80년대에 영국 정부가 예견한 것이라고 하니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파바박..!

'정말 정치인이 사라질까? 그럼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을까? 예상하기로는 2012년, 혹은 2018년 쯤이니.......현 대통령 임기가 언제까지지? 딱 2012년이네. 아우 아까워, 못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읽었다...

......


그냥, 그랬다고요.

약지 관절이 또 아프다. 손 힘을 빼려고 연습곡을 많이 했더니 주먹을 쥐먹 뻐근한 느낌이 오는게 이번엔 손 전체가 다 아픈 듯 하다.
첼로를 켜면서 앓을 수 있는 병 - 척추측만증, 방아쇠수지, 팔목터널 증후군, 목디스크(경추추간판탈출증) 등등.
이 중 척추측만증은 레슨 선생님도 앓았던 병이고... 나도 요즘 허리가 아프다.
오른쪽 어깨도 아프고..왼쪽 팔꿈치도 아프고..뭐냐 이건.....환자?

요즘 갑자기 바이올린에 급 관심이 생겼다. 어렸을 때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곡들을 좋아했는데 요즘에 밝고, 신나는 곡들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주하면서 웃을 수 있는.
그리고 바이올린을 들을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반짝반짝 거리는 화려한 음들도 좋아졌고.
예전 같으면 부르흐bruch하면 역시 콜 니드라이Kol Nidrei! 라고 했을 텐데 지금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다..홀홀.

한번 관심이 생기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은 크기도 작아..어디든지 데리고 갈 수가 있어....첼로는 어디 데리고 가려면 어깨가 빠지잖아. 소프트 케이스에 넣고 지하철을 탈 때면 혹시 누가 브릿지 건드릴까 노심초사 해야하고. 바이올린은 악기도 연습용은 첼로에 비해 싸고..현 값도 더 싸고..연습용에 국한된 얘기지만, 한 마디로 유지비가 첼로에 비해 싸! 작으니까 팩도 잘 돌아갈 거야.. 첼로는 팩 안돌아가면 죽어도 안 돌아가젾아..튜닝하려고 한시간 동안 팩 잡고 있어봐..눈물나지. 켜려면 힘도 더 많이 들고... 그러니까 몸이 아픈 거 아냐.ㅠ_ㅠ 최소한 척추측만증 같은 건 안 오겠지. 손가락 간격도 좁아서 첼로처럼 힘들게 쫙쫙 펴지 않아도 될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은 켜면서 춤을 출 수도 있어!'

이런 생각까지 들자, 바이올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근데..엉? 배우기 힘든 악기? 처음 연주했을 때 가장 실망스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 바이올린이 배우기 힘든 악기에 속했나?생각하며 초보자들의 연주를 들어봤다.

아....제대로 된 소리내기 정말 힘든 악기구나......

금방 수긍할 수 있었다. 그 뭐랄까, 쨍쨍거리는 소리가 굉장한 실력을 쌓지 않는 이상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예전에 동아리에서 한번 비올라(바이올린이었나?)를 만져봤던 기억이 났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는데... 그때 턱을 통해서 머리가 울리는 통증을 느꼈었다. 첼로는 가슴을 울리는데 얘는 뭐 이러냐..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소리를 낼 때까지 이걸 견뎌야 한다니 정신 건상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더 찾아보니... 턱에 땀띠?-_- 청력 손상? 오른쪽과 왼쪽 턱이 크기가 달라지는 기형현상? 쇄골에 만성적인 통증?

......역시 쉬운 건 없다!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 통증을 제외하더라도 어느 악기를 연주하던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근육과 관절을 쓰기 때문에 통증은 있을 수 있는 거고, 그에 따른 체형 변화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병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뿐.ㅠ_ㅠ

나이.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7. 4. 03:00 posted by 파란수

오늘 지하철 4호선 한 칸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한 할아버지를 봤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너무 소리를 질러 정확하게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대강 이런 것이었다.

"촛불이...........(어쩌고)
경제를 살려야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하고...........(저쩌고)
민주노총? 노동계? 다 패버려야 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자, "시끄러?시끄러우면 다른 칸 가!"라고 소리도 질렀다.(그 말이 끝나자 할아버지 옆에 앉은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진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난 한정거장만 가면 되는 처지라, 내가 내릴 곳에서 내렸다.

곧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저 할아버지도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과 그 경험으로 생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개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당대표로, 아님 어떤 집단의 대표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야 개인 자격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당의 의견을 관철 시키기 위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어거지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저 할아버지는 그건 아니므로 개인 대 개인으로 충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귀를 닫고 있었다.
저분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몇십년을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난 그게 더 두렵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니. 그렇게 어떤 틀 안에서 갇혀버리게 된다니.
이런 두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 루이제 린저 생의 한 가운데에서 니나가 어린 시절 할머니를 보고 드는 생각을 쓴 부분을 읽었을 때 부터였던 것 같다.(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좀 더 생각이 명쾌해지고, 깊어지는 게 아니라 저렇게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니나는 저 문제를 해결했던 것 같은데 난 아직도 해결이 안된다.
나이가 들면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있다. 다리가 아파서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못할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악기를 켠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는지 하는 취미활동을 못할 수도 있고, 눈이 나빠져 책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게 생각난다. 젊었을 때는 맛있는 와인을 좋아하고, 좋은 스피커로 음악 듣는 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드니 맛있는 와인이든 맛없는 와인이든 맛이 똑같고, 좋은 스피커로 들어나 나쁜 스피커도 들으나 구별이 안된다고)이것 만으로도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충분히 공포 대상인데 슬기롭게 되지는 못할 망정 자기 생각에 갇혀버리게 된다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입안에서 쓴 맛이 가시질 않는다.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겠지.
말을 하지 않았을 때는 못생겼는데 말을 하는 순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좀 멍청해 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이러한 고백도 얼마나 멍청하고 닭살 돋는 고백인지)
만약 내가 늙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집회가 벌어졌을 때 그 집회에 찾아가 젊은 사람들에게 왜 여기 나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충분히 설득 당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서.

[소설] 뺑소니 사고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7. 4. 02:28 posted by 파란수
이청준의 단편 소설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뺑소니 사고>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봉사는 될 수 있을 망정 진실에의 봉사는 아니었다.
s일보 기자인 배영섭이 양진욱에게 설득당하고 나서 중얼거린 독백이다.
배영섭의 딜레마는 이것이었다. 14년전, 자유당이 3.15 부정선거를 치르고 사람들은 구심점 없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술렁거리고만 있을 때, 부패한 정권에 저항하여 단식하던 일파 선생이 한 고등학교에서 연설 중에 쓰러져 숨지는 사건이 불씨가 되어 학생들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항거하기 시작했다. 결국 자유당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이것은 소설 속 내용이다.)그런데 문제는 일파 선생이 단식을 하는 척만 했지 실제로는 조금씩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배영섭은 알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접근한 순간, 후에 일파사상연구회의 회장이 되는 양진욱에게 설득당하고 만다. 양진욱은 거짓 단식을 밝혔을 때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 역사의 수레바퀴 방향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겠냐고 으름장을 놓음으로써 배영섭을 설득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것이다.
선생이 거짓 단식 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진실은, 자유당 정권이 부패했고 부패한 정권은 퇴진시켜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연히 그 원동력을 일파선생이 제공했지만, 그 단식이 거짓이라고 정권부패도 거짓은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몇주전 방송된 PD 수첩에서 자신들이 유도한 결론으로 끌고 가고자 의도된 오역으로 점철된 방송을 했다고 들었다. 나도 그 방송을 봤다.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역사에 대한 진실은 아니다. PD 수첩이 광우병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했다고 우리 정부의 미국 소고기 수입에 대한 태도가 올바르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 화난 민심을 물대포로 다루는 정부를 잘했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PD 수첩은 우연히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 애초부터 시민들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은 없는 것이었다.

약간의 사실을 가지고 진실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 할 수 있는 것은 착각이다. 이것은 진실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도 적용된다.
양진욱에게 설득당했던 배영섭은 14년이 지난 후 순수하게 사실을 알리는 측면에서 기사를 쓰고자 하지만 거짓 단식에 대한 기사를 쓰기 직전, 결국 뺑소니에 치어 죽고 만다. 소설 속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양진욱에게 살해당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양진욱은 배영섭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에 흠집을 낼까 두려워했다. 양진욱이 행한 행동 또한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을 사실로써 받아들이지 못하고 확대해석해 버렸으며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의적 해석을 한것이다.
사실을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다고 은폐해버리거나, 혼자 독점하려 하면 안된다. 사실은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의도된 오역? 감춰야할 것이 아니다.사과방송하고 끝내면 된다.  검찰이 수사?방송 폐지? 그렇게 확대해석하여 시간낭비할 일도 아닌 것이다. 사실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우리가 볼 것은 진실이다.

첼로를 하게 된 이유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6. 28. 14:41 posted by 파란수
첼로를 하고싶다라는 생각을 언제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가 선택한 대부부의 답들이 그렇듯 드라마틱한 동기보다는 나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잡념의 덩어리들이 길고 긴 시간을 내 주위에서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뭉쳐져 한손에 잡히는 확실한 신념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게 바로 그것이었다. '첼로를 배우고 싶다.'
고3 때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대학교에 가면 첼로를 배워서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유럽을 돌아다니다 돈 떨어지면 악기 연주로 구걸할 수 있지 않겠냐고. 웃기게도 그 당시 나는 첼로를 배우고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악기도 없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야, 그럴 돈이 어디 있냐?"
그렇다. 난 돈도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첼로라는 작지 않은 덩치의 악기를 상하지 않도록 비행기에 태우는 것도 문제라는거, (그러기 위해선 몇십만원짜리 고가의 케이스가 필요하다.) 그 녀석을 들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도 불가능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다.
아무튼 그 당시엔 몰랐으니까. 꿈꾸는 건 누구에게나 자유니까. 아무렇게나 함부로 꿈을 내 뱉어도 괜찮았으니까. 마음껏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얘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나이 때에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난 정말 레슨을 받고자 했다. 수능이 끝난 2000년 겨울, 첼로 카페에 '모여서 레슨 받을 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돈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저렴하게 배워야 했기 때문에 단체 레슨이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근데 웃긴건 선생님을 구한 상태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모였다. 게다가 선생님도 구해졌다! 내 글을 보고 레슨해주고 싶다고 연락이 온거다.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해서 연락처를 모으고, 선생님을 먼저 만나서 레슨 날짜를 잡았다. 선생님은 첼로전공자였고 지방대를 나온 아주머니셨다. (정확히 엄마뻘이었다.) 막상 모이고 나니 몇사람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튼 레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한달에 10만원.
지금 생각해도 꿈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악기를 잡았을 때를 잊을 수 없는데, 보잘 것 없는 실력이었을테니 소리가 좋았을리 만무하지만 송진 묻은 활과 현의 마찰이 색깔있는 소리를 내며 악기를 공명시키고 첼로 뒤판을 거쳐 손과 가슴에 그 울림이 전해졌을 때는, 난 절대 알수 없었던 오래된 역사적인 사건을 바로 옆에서 낱낱히 보게 되는 듯한 명쾌함과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입학해서는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내 첼로도 샀다. 첼로를 사는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회소화 하고 싶었던 우리 엄마의 금전적 희생이 뒤따랐다. 이 사고 잘 치는 딸내미..
이제, (철딱서니 없는)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비행기 값을 벌어야 하는데 이게 문제였다. 레슨비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댔었는데, 그 당시 시급이 2,000원이어서 한달 벌면 10만원이 조금 넘었다. 레슨비를 빼면 몇만원정도 남는데 밥값과 동아리비(오케스트라 말고 물리학술동아리도 들고, 율동동아리도 들고.. 무지하게 많은 동아리를 들었었다.)를 내도 나면 남는게 없었다. 나중엔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좀더 고급(?) 직종인 과외를 했는데 과외하면서는 돈을 조금 벌 수 있었다.
시간도 문제였다. 일주일에 두번 첼로를 들고 강동에 있는 피아노학원으로 갔는데 그 학원 가는게 꽤 노동이었다. 역에서 멀어서 왔다갔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악기를 산 뒤에는 들고 갔기 때문에 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에 다녔다. 근데 대학 새내기, 1학년이라는 게 왜 이리 바쁜지. 게다가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 궁금증이 솟아나오는 환경들..그리고 시험기간이라치면 더더욱 레슨을 빼먹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몰래 음대 연습실에 들어가 연습도 해보고(경비 아저씨가 나가라고 한 적도 있다.)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뮤직캠프도 가고 미완성 교향곡을 메인테마로 연주회도 했다. 물론 내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내에서 끼익끼익 소리내는 정도였다. 연주회 때는 민폐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려운 부분은 활만 움직이는 '활싱크' 테크닉을 익혔다.(;;;;)
근데 이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라는 것도 돈이 엄청 들어가는 단체였다. 물론 동아리 운영을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돈이었겠지만 나에게는 10만원정도 들어가는 뮤직캠프도, 1~2만원정도 회비가 필요한 모임도 부담이었다. 과외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없을 때는 저축해돈 돈을 곶감 빼먹듯 빼먹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레슨은 그만두었고 오케스트라 동아리도 <어떤 문제>로 그냥 나오게 되었다. 동아리만큼은 사람 사이 인연도 있고 해서 큰 모임은 참석하고, 내라는 돈도 다 냈었는데(1학년 말인가 2학년 초인가 쯤 많은 동아리 회원들이 그 학기 방학에 있을 뮤직캠프를 불참하자, 참가하든 하지 않든 동아리 발전비로써 캠프비 10만원을 내고 내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했었다. 난 뮤직캠프는 불참하고 발전비 10만원을 냈다.)뭐..그 <어떤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자 자연스레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제명당했다.

이걸 끝으로 내 첼로는 몇년간 잠을 자다, 중간에 잠깐 레슨 선생님의 도움으로 잠을 깼다가(너무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자;;그지 본능;;선생님이 공짜로 알려주겠다고 했었다.)멀다는 핑계로 힘들어져서 그만 두고 나서는 또 잠이 들었다. 그 중간에 잠깐 깨있었던 시간들을 포함하면 대략 7년을 조용히 내 방 한구석에서 그냥 서 있었던 셈이다.
돈과 시간..대한민국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것도 없었다. 결국 (철딱서니 없는)유럽여행도 갈 수 없었다.



다시 첼로를 들었을 때는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새로운 레슨 선생님을 만나고, 악기사에 가서 내 첼로 상태를 보여주고. 악기사 아저씨는  7년 동안 방치했던 첼로 같지 않게 거의 손볼 데가 없다고 했다. 이 것도 참 다행이었다. 만약 앞판 뒷판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거나, 터졌으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을테니 말이다.
현도 녹슬어서 원래는 갈아야 하지만 유로화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끊어지지면 바꾸라고 레슨 선생님이 말해서 현도 갈지 않았다. (아직도 그 현 쓰고 있는데 언제 끊어질지 불안불안하다.)

왜  바이올린이 아니었는지, 플룻이 아니었는지..처음 첼로를 잡았던 날을 생각하면 답이 떠오른다.
난 대강 그 느낌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지.

옛날 내 꿈이 유럽에서 돈 떨어지면 구걸하려고 첼로를 배운다면, 지금은 평생 친구로서 첼로를 배운다.
여전히 내 실력은 바닥을 길 만큼 어설프로 형편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들려주고, 내가 즐기기 위해서.

그러면 언젠가, 유럽 한복판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 대학로 어느 구석에서라도 구걸할 순 있겠지.

손가락 아프다..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6. 16. 16:58 posted by 파란수

*손가락 부상?
아..왼손 약지 관절이 아프다.
연습을 너무해서(?)그런가.(물론 잘못된 운지법으로)
아니면 어디에 부딪혔나? 약지 첫번째 관절만 부딪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_-
그래서 오늘은 개방현만 연습하려고 했는데 개방현 한 20번 정도 하니까 지겨워져서 결국 미뉴엣 다장조 연습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더 아프다.ㅠ_ㅠ
개방현 연습을 더 많이 해야하는데. 100번씩 지겨워서 어떻게 하지?

*마스터클래스
레슨 선생님이 올해 강원도에서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에 간다는데..
대가 앞에서 레슨 받는다고 한다! 멋지다.



스티븐 이셜리스의 마스터 클래스인데 분위가 너무 좋다.+_+ 어쩜 저리 친절하신지.
오른손, 왼손 손 모양 너무 좋다. (계속 play하면서 봐야징)
 그러나..우리 선생님이 받는 마스터 클래스의 저렇게 따뜻한 분위기는 아니고 아마 이런듯.



故 로스트로포비치의 마스터 클래스인데..대가 앞인 것도 떨린데 무대 위에서 레슨 받는데다 앞에 객석에는 첼로 전공자들, 학생들이 잔뜩..여러사람 앞에서 평가 받는 기분이라 정말 긴장될 것 같다.
그리고 로선생님 장난기가 많은 건지 뭔지, 개인적으로 난 좀 무섭다..;;.

난 화상 마스터 클래스를 받아볼까..



.........땡큐-_-;;


즐거운 농부와 잡담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6. 10. 01:37 posted by 파란수
즐거운 농부..
슈만 작곡, 스즈키 1권 열다섯번째 곡이다.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헐~
특히 D선의 솔과 G선의 도를 어떻게 연결시키는 거지? *_*
도통 자연스럽게 되질 않네.
즐거운 농부가 익숙해져서 얼른 바하 미뉴엣 2번 연주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혼자 삑사리 내면서 괜히 연습..
사실 이걸 할게 아니라 레솔레솔레라레라레시레시 베르너를 연습해야하는데.
(으윽..난 피아노 배울 때도 이랬어..그러니까 기초가 없지)
 
내일이 6월 10일인데..아니, 오늘이구나.
잠이 오질 않아서 시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많다.
인터넷하다 밤을 새우는 게 아니라 잠이 도무지 오지 않아 컴퓨터를 켜는 일이 잦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나 쓰게 되네.
TAG 잡솔

자세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8. 5. 29. 05:36 posted by 파란수
갑자기 첼로가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서, 온갖 첼리스트들이 첼로를 안고 연주하는 사진을 찾아 봤다.
대체로 첼로를 약간 삐딱하게 눕히고 연주하는 듯.?
그러니깐 엔드핀은 가운데 오지만 첼로넥은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해야할까.
탱고를 출 때 정자세로 추다가 어느 순간 연인을 약간 눕혀놓는 그 정도?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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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첼로 넥이 귀에 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원래 그 위치가 맞는 모양이다.
근데 뭔가 불편해..

TAG 첼로

헌책방에서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7. 10. 8. 21:17 posted by 파란수

오랜만에 학교 앞에 있는 헌책방에 갔다.
표면적인 목적은 이미 절판되버린 르귄이나, 이탈로 칼비노의 책들을 좀 구할 수 있을까..기웃거리기 위해서였고, 실상 그저 어슬렁 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소설 코너에 가서 더듬더듬 짚으며 책들을 훝어봤다.
'역시나 이런 변두리에 위치한 헌책방에 몸을 팔기 위해 놓여있는 신세란,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껌같은 신세이거나 혹은 무능한 지은이의 허황된 꿈에 희생된 희생양일 뿐인건지..'
중얼거리다 문득 내 눈은 어느 활자에 멈췄다.
아주 심각한 글씨체였는데 제목 또한 무시무시했다.
"불꽃여자 나혜석"
나도 모르게 그 활자를 소리내어 읽었다. 나혜석 전기였다.
60년쯤에 나온 그 책은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곰팡이향을 폴폴 풍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맨 처음은 나혜석이 이혼을 한 후, 그 사연을 글로 적은 이혼 고백서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혼고백서를 읽은 한 여성이 나혜석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그 다음은 불륜 유언비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파리에서의 삶...
이혼고백서에는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끈질기게 청혼했는지, 시댁과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남편이 어떻게 변심했는지,  최린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이혼 후 어떤 생활을 했는지, 지금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떤지 등등히 자세히 쓰여져있었다.
남의 이혼 따위에는 관심없었지만 이 할머니, 아니 아주머니한테는 관심이 있었다.
글들은 왠지 모르게 변명같은 말들이었다. 어디에도 여성해방 같은 거창한 대목은 없어보였다.
다만, 최린과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에선 현재와 비교해도 상당히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느낌은 받았다.
한창 읽고 있는데 헌책방 주인(직원?)이 다가와 폐점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런. 7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아직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결국 그 은근히 수다스런 아주머니를 책장에 꽂아두고 헌책방 밖으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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