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4.15 벚꽃지다
  2. 2006.04.05 홍릉길에서, 어떤 사고 (2)

벚꽃지다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6. 4. 15. 19:17 posted by 파란수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나는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오늘, 내일, 오늘, 내일..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벚꽃이 질 날을 안타까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불경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제 막 탄생했을 뿐인데 벌써 죽음을 생각하다니.

오늘이 벚꽃구경을 할 수 있는 마지막날이었던 것 같다.
살짝 미풍만 불어도 우수수-꽃잎이 떨어졌다. 아름답다.
어떤 꽃이든 그냥 피어 있기만해도 아름답다. 벚꽃도 마찬가지이다.엷은 봄날의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엷고 탁한 분홍빛의 벚꽃나무는 혹시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한다. 하지만 벚꽃의 낙화는 더 아름답다. 혹시 추락하기 위해 피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생을 산다는 것일까.

에이, 그만두자. 낙화가 아름답다 하는 건 인간이 느끼는 정서일 뿐 벚꽃나무 그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꽃잎이 떨어진다고 해서 나무가 죽는 것도 아닐 뿐더러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또 다른 아름다움, 초록색의 이파리를 얻게 될테니 말이다.
또 우리는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초록의 싱그러움을 노래할 것이 아닌가.

벌써 땅거미다.
따뜻한 밤바람이 분다.
오늘은 하얀 밤 벚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

TAG

홍릉길에서, 어떤 사고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6. 4. 5. 17:25 posted by 파란수

지금은 나뭇가지가 흔들거리기만해도 연두색 잎이 햇빛에 부서져 봄이 느껴지는 날씨이지만
그 때는 봄의 문턱, 햇살 가운데에서도 싸늘한 찬바람이 부는 초봄이었다.

나는 차에 치인 개를 보았다.

그 길은 내 등교길, 가로수는 우거져 있으나 원래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한적하고 좁은 도로였다. 나는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자전거를 타고 바삐 학교로 향하던 차라, 발을 동동구르는 어떤 여자가 곁눈으로 보였지만 무심히 지나쳤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비참한 목소리만 듣지 못했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개는 차에 두번 치인 듯 싶었다. 내가 자전거를 돌려 개가 있는 쪽으로 갔을 때는 도로 한가운데 지친 듯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이런 저런 상황을 맞춰봤을 때 아까 봤던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기 직전에 한번, 그리고 나서 어떻게든 그 도로를 벗어나려 했을 때 한번,-그리고 이것이 내가 들은 그 비참한 목소리-이렇게 두번 치인 것 같았다. 여자는 소방서로 바삐 신고를 하고 있었고 개가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탓에 개 사이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또 한번의 사고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 여자와 같이 도로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개에게로 뛰어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개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상황을 모르는 무심한 운전자가 연약한 개의 발이라도 밟고 지나갈까봐 걱정되어 개를 도로 한켠으로 옮겨야 겠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나와 같이 뛰어가던 여자가 '개가 예민해져 있을터라 물릴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개에게로 다가갔을 때는 옮길 수가 없었다.
큰 외상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개의 입에서 똑똑 흘러 검은 아스팔트를 적시는 몇방울의 피만 아니라면. 나는 그 붉은 피가 두려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피를 흘리며 차분한 표정으로 있는 개의 하얀 얼굴이 두려웠다.
그 피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당신 말대로 물릴지도 모르겠다,' '다리 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 옮길 때 아플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했지만 옮길 수 없었던 이유, 차마 옮길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 피가 두려웠다. 개의 차분한 표정안에 숨겨져 있으나 피를 통해 조금씩 발산되는 그것, 분명 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슬픈 속성이 개를 만지는 순간 나에게 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불쌍한 떠돌이 개라는 시선으로 보고 도움을 주고자 다가갔지만 가까이 가서 봤을 때 그 하얀 지친 짐승은 그저 개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어떤 개념이었고 그것이 보고싶지 않아 내 스스로 눈을 감아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닌 것에 존재하는 고통의 표상, 다른 이는 알지 못하는 말 못할 사연 그 자체, 개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고독의 입자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방서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그저 차들이 개 가까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바리케이트 역할 내지는 수신호로 차들을 저쪽 차선으로 보내는 중재자로서의 일 뿐이었다. 도로 가운데서 다친 개가 있다고, 다른 차선으로 옮기라고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나의 비겁함을 곱씹었다.
그 개가 내가 돌봐줘야할 객체가 아니라 어떤 총체적 관념으로 다가온 것이 당황스러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튼 나는 개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가고자 시도하지도 않았다. 내게로 느껴질 고통이 두려워서.
몇십분 후에 개를 실어갈 차가 왔고 개는 헝겊인형처럼 푸대자루에 넣어졌다.
그리고는 노란 황사가 가득한 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날 내내 원인을 알 수 없는 피곤감에 시달렸다.

TAG 고독,
  1. Commented by BlogIcon 랩소디 at 2006.04.05 17:32

    세종대왕기념관에서 홍릉초등학교 사이 길이 아닌가 싶네요. 조금만 신경썼으면 개도 소년님도 그날을 힘든 하루로 기억하지 않았을텐데...

    • Commented by BlogIcon 파란수 at 2006.04.05 20:57 신고

      네. 그길을 아시나봐요. 처음 뵙겠습니다. 꾸벅.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너무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어요.
      (+랩소디님 방명록에 글을 남기려고 했는데 안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