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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7 [소설] 공중곡예사
  2. 2006.03.08 미래를 향하면서도 과거로 가기

[소설] 공중곡예사

그냥잡담/그럭저럭일상 2006. 3. 27. 21:26 posted by 파란수
이 책의 내용을 한문장으로 축약하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1924년 11월 초부터 1974년까지, 믿을 수 없는 어떤 인물 - 세인트 루이스의 어느 유흥가를 헤메던 가장 작고, 가장 영악하고, 가장 더러운 아홉살바기 부랑아 월트 - 의 삶에 대한 기록.

나는 생을 살아갈 때 한 순간의 선택에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길은 나누어질지 모르지만 인간의 속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 한 점에서 만난다고 믿고있다.
마치 싸구려 잡지 책에서 흔히 등장하는 심리테스트 - yes or no 화살표를 따라가는 - 에서 헷갈리는 질문에 나올 때 약간씩 답을 바꾸어도 결국 C타입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만 달라지는 것은 과정, 얼마나 풍부하게 사느냐 아니면 얼마나 건조하게 사느냐 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길바닥에서 배운 것이라곤 눈치 밖에 없는 잔머리꾼이자 인간의 조건을 미립자 한두개 차이로 간신히 만족하는 건방진 꼬마 월트는 9살에 예후디 사부를 따라감으로써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중력의 법칙에 묶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 바로 하늘을 나는 것이다. 이 책은 하늘을 난다는 너무도 특별하고 허무맹랑한 행위에 대해 그 방법이나 과정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마치 누구나 겪었을 법한 소년시절의 한 페이지를 보듯 편안히 읽을 수 있다.

처음엔 더러운 부엌에서 분노와 절망에 찬 눈물을 흘리며 몇센티 정도로 간신히 떴고 물위와 하늘에서 걷는 방법을 터득, 얼뜨기들의 테러를 받는  촌스럽고 어설픈 첫공연 후엔 차츰차츰 명성을 쌓아가 나중엔 스토리있는 공연을 하는 공중곡예사, 예술가 원더보이 월트로서 하늘에서 청중을 압도하는 연기를 펼치게 된다.
그리고 14살에 되던 해 다시 땅에 붙잡혀 사는 인생이 되었고 그 후의 인생은 예후디 사부를 만나지 않았어도 갔을 법한 인생, 길바닥의 더러운 헝겊인형, 날 때부터 부랑자의 속성을 지닌듯한 거리의 소년이 걸었을만한 인생 행로를 가기 시작한다.

월트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구구절절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책 속에서 내내 월트의 인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며 그 자신 밖의 배경인 시대상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정신없이 지나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듯.
물론 그가 예후디 사부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원더보이 월트로서의 삶은 절대 없었을 테지만 9살에 했던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뒤바꾸었다기 보다는 너무나 특별한 '인생의 장' 하나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책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순간들. 차갑고 냉정한 마법사 같은 예후디 사부와 따뜻한 형이었던 곱사등이 흑인 천재 이솝과 어머니 역할을 해주었던 인디언 수아주머니와 지적이고 아름답지만 한편 팜므파탈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던 위더스푼 부인과 함께 했던.

그 이후는 마치 여분의 삶처럼 축약되어 있지만 월트가 진정한 평안을 찾은 것은 그 축약된 여분의 삶에서이다. 그리고 월트는  마치 그 모든 일은 소년시절의 추억에만 묻어두려는 듯이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게 된 이후 45년동안 단 한번도 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고 나중엔 날 수 없게된 일을 절실하게 아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하겠다.
그 대신 마치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이 말썽쟁이 작은 악마 노릇을 하는 유세프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 때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에 대해, 그 자신이 생명의 붉은 불꽃으로 가득 찬 얼마나 겁없고 당돌한 소년이었는지에 대해.
그리고는 너무나 큰 열정과 감정으로 가득차 올라 자신을 증발시킬 줄 안다면, 어떤 아이나 하늘로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하는 것이다.

다행히 어제 있었던 늦은 술자리 후유증을 크게 느끼지 못한채 학교로 갈 수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잘 때는 과연 내일 있는 실험수업에 늦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로써 세번째 실험 수업에 들어갔다. 정보디스플레이, 생물학과 그리고 오늘 화학과. 반마다(혹은 과마다) 아이들 성향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앞서 들어간 두번의 실험 수업은 어떤 사정 때문에 딱 한 번씩만 들어간 것이고 오늘 들어간 반만 앞으로 한학기 내내 들어갈 것이다. 근데 아이들이 질문은 별로 없는데 아주 개구지다.

요즘 폴 오스터의 고독의 발명을 읽고 있는데 기억의 서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1979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의 삶은 더 이상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라디오를 틀고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한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현재에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미래에서 현재를 보고 있다고 느꼈고, 그 과거로서의 현재는 너무 진부한 것이 되어서 보통때 같았으면 그를 분노로 가득 채웠을 그 날의 지독한 우울감마저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떤 잃어버린 문명의 연대기에 적힌 것을 읽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정신이 아주 맑아졌을 때 그는 그 느낌을 현재에 대한 향수라고 부르곤 했다.

......중략......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아들이 된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보고 그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을 본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를 볼 때 무엇을 보는지 상상하면서 자신이 그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그는 그 일로 감동을 받는다. 그를 감동시키는 것은 단지 그 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또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 안에 서 있다는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아이를 통해 보는 자신의 사라져 버린 과거이다. 그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향수, 지가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이 그 순간 행복감과 슬픔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만약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가는 동시에 뒤로도 가고 있는 것처럼., 미래로 들어가는 동시에 과거로도 들어가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너무 강해서 그의 삶이 더 이상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떄가 있다. 그것도 자주 있다.

"그것도 자주 있다."
중얼거리면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나는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현재다. 그런데 나와 관련이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보는 것이다. 시간은 미래로 흐르는데 나는 과거로 향하는 어떤 하나의 프로세스.
그리고는 개구진 1학년들과, 교정에 꽉찬 사람들의 물결을 생각해보는 것이다.